'인간말종:엽기'에 해당되는 글 478건

  1. 2009.01.16 다시보는 일본의 드럼통 엽기 살인사건 by 호박씨
  2. 2009.01.16 만화 폭삭 주저앉았을때가 생각나는군 by 호박씨
  3. 2009.01.16 현재의 미네르바 사태는 이런 상황 by 호박씨


* 1988년 11월 25일,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죄없는 여고생을 하교길에 납치하여 수개월간 감금하며 여러명이서 온갖 고문과 성행위 등

'인간으로써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폭행, 고문등을 한 뒤

무참히 살해하여 공사장 인근의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묻어버린 뒤,

평상시와 똑같은 일상을 살던 소년들.

그들의 나이는 불과 15~18세, 그들은 모두 붙잡혔지만 한 소년은 자신의 죄를 뉘우침 없이

자신들이 했던 고문과 폭행, 성행위등을 모두 자백하였다.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로 대단하였다.

 

15살의 여학생을 하교길에 납치한 뒤

그들의 아지트(소년C의2층집)로 끌고 가 수시간 폭행을 가했고,

신고를 한다거나 하면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시킬거라고 겁을 준 뒤,

공중전화로 집으로 전화하여 친구 집에 있으니

걱정말고 신고같은 건 하지 말라고 하여 부모님을 안심시킨다.

 

그 뒤 그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 한 뒤, 무참히 폭행하는 등

그 여학생은 단지 스트레스를 푸는 기계였다.

그 여학생은 하루 18시간 이상의 폭행과 성적고문등을 당했고,

그 여학생은 신고를 시도한 적이 있으나,

발각되어 전화가 끊긴 뒤 역탐지하여 다시 걸려온

경찰의 전화에 장난 전화였다며, 무마시켰다.

 

그 뒤 그 여학생은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야 했고,

신고의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그 여학생에게 가했던 것들은 실로 인간으로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물과 음식을 주지 않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즐기다가

우유와 건포도를 먹이자 몸이 반응하지 못하여 토해내면,

더럽다며 구타하고, 손, 발, 정강이, 무릎 등에 라이트기름을 발라

불을 질러 고통스러워하며 발버둥치는 모습을 즐기며,

그것을 끄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하지 말라며 폭행하고

그 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붙였다.

이 행위로 인해 소녀는 자력으로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

또한 술을 억지로 다량 먹여 고통스러워하며

토해내는 모습을 즐기고 더럽다고 폭행했으며,

항문 성기등에 불꽃놀이를 안쪽으로 꼽아놓고 터뜨렸으며

(부검 당시 소녀의 대장에 심각한 화상이 있었다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여학생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며 웃지않으면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소녀의 안면을 구타해 코 높이까지 부어오른 볼과

눈부분에 촛농으로 양초를 고정해놓고,

성경험이 없던 소녀의 성기와 항문에

온갖 이물질과 벌레등을 삽입하였으며,

심지어 페트병까지 넣었다.

 

소녀의 부검당시 안면부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손상되었었다.

성기와 항문 부분은 더욱 심각했다고 한다.

여학생은 그들의 요구에 알몸으로 춤과 노래를 해야했고,

미친짓을 해보라는 등 엽기적인 것들을 시켰다.

 

혹한기에 베란다에 알몸으로 나가

여러개의 담배를 한꺼번에 피게 하였으며,

그때마다 웃지 않으면 폭행을 가했다.

폭행을 가하다가 넘어진 소녀가 카세트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자 이를 꾀병이라며 6kg의 철아령을 복부에 던지는 등

소녀가 반응을 않자 몸에 기름을 발라 불을 붙이는 등

반응을 보이자 불을 끈 뒤 2시간 가까이 폭행을 가했다.

 

소녀는 자신이 배설한 소변, 대변 심지어

맞아서 나온 혈흔까지 받아 먹어야 했고,

소년들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손과 발에 비닐봉지를 씌우고 뒤돌려차기등의 폭행을 가했다.

소년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자신의 집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며,

주변인들에게 자랑하며 다녔고

이 사실을 아는 소년들의 주변인은 100여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중 10여명은 직접 폭행, 강간에 관여하였다.

소년 C의 부모들도 여학생이 2층에 있는것은 알았지만,

소년C가 두려워 이를 묵살.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진술하였다.

소년A의 부모는 이 사실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고

집과 전재산을 팔아 5000만엔을 피해자 부모에게 건넸다.

하지만 피해자의 모친은 사건내용에 충격을 받고 정신과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사건이 들춰진 것은 사건발생 4개월 뒤인

평성원년 1989년 3월 29일에 발견되었다.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1988년 11월 8일에 강간, 절도 등에 의해

소년 감별소로 보내진 소년 A를 조사했을때,

담당형사가 무심코 "너 사람을 죽이면 안되잖아?"라는 질문에

다른 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하여 모든 사건내용을 자백.

 

담당형사는 당초의 목적인 강간, 절도의 조사를 받는일 없이,

반신반의한 채, 자백내용에 의지하여

도쿄 코토쿠 와카스 15호지 해변공원

정비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드럼통 한개만 널려있었으며,

드럼통의 콘크리트 틈새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어

경찰은 305kg정도의 드럼통을 크레인으로 매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 갔다.

다음날 오후 경찰서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

 

안에는 보스턴백에 채워진 이불 2장에

휩싸인 여자의 시체가 들어있었으며,

사후 2개월 이상 경과에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 상태가 나빴다.

피하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정도로 영양실조 상태.

전신에 구타에 의한 부종(림프액이다량으로모여부어오른상태)

이 시신의 상태에 있어 사인은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여겨졌다.

시신의 상태는 안면이 심하게 함몰 및 변형되어 있었고,

부패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외관으로부터의 확인은 곤란했지만,

지문이나 이빨등의 조합으로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 후

귀가도중에 행방불명이 된 사이타마현 미사토시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고교 3학년의 소녀(17)인것이 확인됐다.

 

야시오 시내의 아르바이트에 먼저 간 채로 귀가하지 않아

요시카와 경찰서에 수색원을 냈던 부모는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가면서까지 행방을 찾고있는 중이었다.

 

공판기록에 의하면 변호사가

"그 정도의 폭행을 가하면서, 그녀가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라는 질문에

"...........생각할 수 없었다."

라고 대답했으며,

"죄를 뉘우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소년 B, C, D등은 죄를 뉘우친다고 하였으나,

소년A는 "단지 운이 없어서 잡혔을 뿐이다"라고 대답하여 충격을 더했다.

A는 이전에 근무하고 있던 타일공장에 모르타르 드럼통을 조달,

시체를 가방에 넣어 A의 집앞에서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흘려넣었다.

이 때, 공장의 전 상사는 사람을 죽였던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던걸로 파악해 조사하여 처벌하였다.

 

도쿄 고등 법원 판결 (확정)

소년A는 17년형을 받았으며, 나머지 3명에 관해서는 5~9년을 선고했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실제론 이 소년들 이외에도 10여명의 가해자가

더 있지만 그들에겐 약식 기소하였다.

그들은 반성조차 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

부모는 지금 역시 피고인 측에서의 면회신청 및 성묘 허가를 거절하고,

그 비통한 심정을 재판소에 토로하고 있다.

손수 돌봐 길러 온 외동딸을 태연하게 주변에서 문제 삼아

불안 초조로 긴 날들을 보낸 결과,

끔찍하게도 피해자가 살해되기에 이른 부모 등 피해자 감정은,

지극히 엄하여 피고인에 대해 격렬하게 엄벌을 요구하고 있고

피해자의 아버지는 당심 증언에 대해서도

피고인에 대한 원판결의 과형은 너무 가볍다고 해

강한 불신감과 불만의 정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다.

피해자의 모친은 외동딸이 죽음에 이른 자세한 경과를 들은 뒤,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다.

 

덧붙여 주범 A 이외는 이미 출소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에 나와 대부분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

소년C의 부모는 아직도 재판이 부정하다며 혐의를 부정하며

신문사에 이를 알리는 편지를 수차례씩 보내고 있다.

그중 소년D는 가장 반성하고 있으며

폭행당시 소녀는 폭행뒤에 자신에게

"나는 언제 집에 갈 수 있는거야?"라고 말했다며,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다시봐도 이건 미친짓이다 . 일본섬나라의 미친놈들


Posted by 호박씨

한국만화는 대여점덕에 거의 뭐 핵폭탄 맞았었다...

그것으로 인해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물량의 시대가 도래했었다.

왜냐... 아무리 정성스럽고 멋지게 한권 뽑아내도

집 앞에 권당 100~300원 대여점 천국인 한국독자들은 사질않았고

고정적으로 대여점에 팔리는 수익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림에 혼이 실릴수가 없었고 몇몇 만화가들은

질보단 양으로 무조건 많이 뽑아내 대여점 고정 수익을 늘린다는

공장시스템으로 전환 되었다.

점점 한국만화가 무너져가고 있을때쯤 만화가들이 더이상 안된다며

대여점 반대운동을 했었다. 근데 세상은 그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독자들마저 이딴 저질 한국만화 누가 사보냐 라며 되려 질타를 했다.

만화가들 밥줄 끊어놓고...

물론 독자들은 가해자가 아니다.

진짜 가해자는 만화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여점의 무차별 확산을 막지 않은

이 나라에 있지.

만화가들 입장에서 독자들에게 서운했던건 그저

자기들이 그렇게 된 과정을 생각못하고 지금의 결과만 놓고 질타를 했다는 것 일것이다.

결국 한국만화는 그 때 끝났다.

영화는 dvd라는 2차 탈출구라도 있지만...

만화는 만화책 하나로 끝나는 거였다. 절실했을거다...

오죽하면 나름 잘나가던 만화가가 자기는 pc방 알바보다 못한 수익을 올린다고 했겠나...

이러는데 무슨 재밌는 만화가 나오겠나...

뭐 지금와서 만화 살리자고 하는 멍청한 소리는 안한다.

그냥 나름 배부른 영화계가 이렇게 힘있게 자기 밥 먹여주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처지, 그리고 의견을 강하게 말할수 있는게

그때의 배고픈 한국만화가들과는 너무 비교되고 그리고 부러워서 몇 글자 적어봤다.
Posted by 호박씨


ㅎㅎㅎ


근데 저런 만화 많이 볼려면 어디서 봐야 됨?

Posted by 호박씨